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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글

글 쓸 곳이 필요해

언젠가부터 글쓰기를 멈췄다. 꾸준히 써오던 일기도, 블로그에 남기던 끄적거림도 멈춘지 오래다. 이 블로그도 오랜만에 들어와보지만 지난 글을 다시 읽지는 않는 것을 보면 글쓰기를 멈춘 이유도 짐작이 된다. 지쳐있는 나를 보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곤욕스러운 일이다. 굳이 글을 지어가며 일일이 뜯어보고 싶지 않았다.

 

우울에서 탈피하기 위해 많은 것을 시도해왔다. 앱과 영상, 음성을 통한 명상, 운동, 걷기와 달리기, 쓸데 없다고 지나쳤던 것들에 몰입하기, 취미 가져보기, 상담사 찾아보기와 받아보기, 산부인과 가서 피임약 처방받기. 일상은 우울한 날이거나, 아니면 운 좋게 (그리고 이유 없이) 우울에서 벗어난 날이었다. 드디어 우울을 떨쳐냈다며 착각한 날들도 골백번 있었다. 그리고나면 어김없이 우울로 다시 빠져들었다. 우울이 당연해지자 삶에서 의미가 사라졌다. 그 어느 것도 탐구할 이유가 없었고, 내면을 파헤쳐 쓸만한 말들을 골라 늘어놓는 것은 더더욱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내가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나는 긴 생각을 하지 않았고, 누군가의 단상만 흡수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생각은 쉬운 길로만 흘러갔다. 행동은 관성에서 나왔고, 선택엔 진심이 없었다. 이를 자각하자 나는 무척이나 부끄러웠지만 그도 잠시뿐인 나날이 계속되었다. 지금도 그렇다. 나는 또 세상에 의미 있는 것은 없다 들먹이며 쉬운 고민만을 반복할 것이다.

 

다만 가끔씩 힘이 나는 날에는 생각이나 좀 해보련다. 아무것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내가 뭘 생각하는지나 들어보겠다. 오늘 글도 그래서 쓴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도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좋은 점이 있지도 않다. 다만 휩쓸려가는 일상에서 한 발짝 멈춰가는 의식 같은 것이다. 나는 그런 의식이라도 원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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